은하계에서 온 소녀
지은이: 하얀날개
낙엽이 하나 둘 떨어지는 서산한 어느 가을날 밤.
철이는 공부하다가 머리를 식히려 베란다에 나와 기지개를 편다.
우연히 베란다 바깥 언덕 너머 숲속에 이상한 빛이 반짝이는 걸 보게 된다.
호기심이 발동한 철이는 손전등을 갖고 바깥으로 나가 숲속을 살펴본다.
"앗! 넌 누구니?"
핑크색 머릿결에 하얀 피부를 가진 철이 또래 나이로 보이는 소녀가 웅크리고
앉아 있다. 철이가 손전등을 비추자 소녀는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무어라고
말한다. 알아 들을 수 없는 외계어 같은 말에 철이는 당황하며 뒤로 물러선다.
소녀는 일어나서 철이 앞으로 나온다. 그리고 뭔가 스티커 같은 걸 목에 붙인다.
"놀라지 마. 난 은하계 다른 별에서 온 아이야. 지구에선 그 별을 '카펠라'라고
부르지."
"카펠라?"
"은하계 탐험가이신 아빠를 따라 이곳 지구까지 오게 되었어."
"그럼 넌 말로만 듣던 외계인?"
"하하, 그렇다고 봐야지, 너도 우리 별에선 외계인이야."
소녀의 웃음에 다소 표정이 밝아진 철이는, 소녀를 전망이 좋은 잔디에
데리고 가서 앉히고 대화를 이어간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 말을 하니?"
"내 목에 붙인 거 보이니? 이게 우리 말을 지구 언어로 바꾸어 주는 통역
센서야."
"신기하네, 그런데 넌 몇 살이니? 난 열 일곱 살이야."
"나랑 같구나! 아빠가 지구 나이로 내가 열 일곱 살이랬어."
"동갑이라서 반갑네, 하하, 그런데 아빠는 어디 있니?"
"날 여기 내려놓고 가셨어."
"내려 놓다니, 그게 무슨 말이니?"
"탐험가의 딸인 만큼 담력 훈련을 하는 거지. 한 시간 후에 날 데리러 오실
거야."
"너 정말 대단하다. 외계의 별에 혼자 무섭지 않니?"
"은하계 다른 별에도 가본 적이 있어서 별로 무섭진 않아."
"근데 정말 꿈을 꾸는 거 같다. 내가 외계 소녀와 얘기를 하고 있다니."
"하하, 나 역시 지구인과 대화하는 건 첨이야."
"넌 평소 내가 생각했던 외계인과는 전혀 닮지 않았네. 꼭 사람 같잖아."
"너 역시 그래, 우리 종족과 많이 닮았어."
"우린 왜 닮았을까?"
"그건 사는 환경이 비슷해서 그럴거야. 우리 별도 지구와 비슷한
진화 과정을 거쳐 왔거든. 지구의 생물과 닮은 생물이 우리 별에도 많아."
"넌 참 똑똑한 아이네, 아는 것도 많다."
"하하, 그렇지도 않아. 우리 별엔 나보다 똑똑한 애들이 많아."
"너희 별에서도 대학입시 때문에 애들이 고생하니?"
"우리 별에선 대학이란 건 없고, 인격형성관에서 어른이 되기 전까지 자유롭게
교육 받으면 돼. 참, 그런데 지구인은 불쌍한 존재라고 배웠는데."
"왜 그렇게 생각하지?"
"사랑을 추구하면서도 전쟁을 일으키고 수많은 동족을 죽인대."
"응, 나도 인류사를 공부하면서 알게 되었어. 인류는 전쟁의 역사라 할만큼
어느 시대에나 꼭 전쟁이 있었어. 지금도 지구 곳곳에서 종교, 이념 문제로
전쟁하고 있어. 그런데 거긴 전쟁이 없니?"
"우린 지구인과 삶의 본질이 다르기 때문에 전쟁 같은 건 안 해."
"어떤 삶을 사는데?"
"창조자의 메시지에 순응하면서 살아."
"창조자의 메시지? 그게 뭔데?"
"아주 옛적에 선조들이 남기신 문헌에 삶의 가치는 '사랑'으로 완성된다고
기록되어 있거든. 그게 우주를 창조하신 창조자의 메시지라는 거야. 우리
종족은 그 문헌을 믿고 따르고 있어."
"그렇구나, 우리 지구인도 사랑의 소중함을 알지."
"그런데 지구인은 자신의 수명을 모른다면서?"
"그게 무슨 말이니? 그럼 너희는 자기 수명을 아니?"
"우린 몸속 유전자를 통해 언제 병이 들고 언제 죽는지 날짜까지 정확히
계산할 수 있어."
"그런 걸 알고 살면 오히려 허무하지 않을까?"
"우리 종족은 그런 감정을 느끼지 못해. 어른들은 자기 죽는 날을 알면서도
삶에 감사하고 살고 있어. 그리고 유전자 조작에 의해서 죽지 않고 살 수도
있어."
"죽지 않고 살아? 영원히?"
"하지만 그렇게 영원히 살기를 원하는 어른은 없어."
"그건 왜지?"
"수명에 한계가 없으면 삶이 무의미해지기 때문이래. 그리고 삶의 질도 떨어
진다고 해. 그래서 주어진 자신의 수명 만큼만 감사한 마음으로 산다고 해."
"우리 지구인이 너희 종족을 본받아야 겠다. 하하, 내가 널 만나서 이런
대화를 했다고 어른들에게 얘기하면 믿을까?"
"물론 우리 종족 어른들은 믿을 거야. 우린 거짓말 하지 않거든."
"우리 어른들은 믿지 않을 거야. 의심부터 하거든. 그게 너희 종족과 우리
지구인의 큰 차이점인 거 같애."
"나 이제 가봐야 겠어. 아빠가 날 데리러 올 시간이 됐거든."
"아쉽네, 은미야, 그럼 담에 또 와."
"뭐 은미? 은미가 누구니?"
"네 별명이야. 내가 방금 생각해 냈거든."
"뭐? 하하, 은미가 무슨 뜻이니?"
"은하계에서 온 미소천사."
"뭐라구? 하하하, 고마워, 별명까지 지어주고."
"헤어질려니 섭섭하네, 다음에 또 올 수 있니?"
"오도록 해 볼게, 그럼 담에 또 봐."
밤하늘 별빛 속에서 밝은 광채 하나가 지구를 향해 내려오더니, 철이가 사는
집 근처 언덕 위를 맴돈다. 빙글빙글 도는 광채는 우주선의 모습을 드러낸다.
은하계에서 온 소녀는 언덕 위로 올라가서 철이에게 손을 흔든다.
철이는 멍하니 신비로운 광경을 쳐다보면서 손을 흔든다.
소녀는 광채 속으로 사라지고 우주선은 서서히 밤하늘로 올라간다.
시간은 흘러 철이 나이가 스무다섯 살 되던 해 여름날 밤.
은하계의 소녀 은미는 철이와의 우정을 잊지 않고 다시 찾아왔답니다.
철이와 은미는 조금씩 변한 서로의 얼굴을 보며 웃음 지었어요.